과거 화장실은 어두우며 좋지 않은 냄새가 심했기 때문에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에 최적화 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화장실 귀신을 찾아보면 그 수가 별로 많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화장실은 집을 지키는 가택신 중 하나인 측신의 영역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장실에 나타나는 귀신이나 도깨비의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화장실에서 나타나는 존재라 그런지 일을 보는 사람의 불알을 움켜쥐고 잡아당기는 무섭고 끔찍한 짓을 하는데 그후에는 그 사람이 장차 대성할지 어떨지를 이야기 해주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녀석입니다.
에픽로그 <경복궁 괴물투어 핸드북> 측간도깨비
옛날에 어떤 절에서 소년 셋이서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한 소년이 측간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는데 어떤 커다란 손이 밑에서 나오더니 이 소년의 불알을 꽉 쥐고 잡아당겼다. 이 소년은 “이놈! 이게 무슨 장난이냐? 놔라!” 하고 크게 호령했다. 그러니까 “나는 도깨비올시다. 당신을 보니 대신이 되실 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쥐고 있던 불알을 놔주었다. 이 소년은 방으로 돌아와서 측간에서 당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다른 소년이 그럼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 하고 측간에 가서 볼일을 보았다. 또 무엇이 나와서 큰 손을 내밀어 이 소년의 불알을 꽉 쥐고 잡아당겼다. “이놈! 장난 말라! 어서 놔라!” 이렇게 말하며 호령했다. 그랬더니 “나는 도깨비올시다. 당신 목소리를 들으니 당신도 대신이 되실 분입니다.”하고 가버렸다. 이 소년이 돌아와서 측간에서 당한 이야기를 했더니 나머지 소년도 자기도 가 본다 하고 측간에 가서 일을 보고 있었다. 또 무엇이 나타나서 커다란 손으로 이 소년의 불알을 꽉 쥐고 잡아당겼다. 대단히 아프고 무서웠지만 겉으로 호기를 부리며 “이놈 장난 말라. 어서 놔라!”고 소리 질렀다. 그랬더니 그놈은 “너 뭐라느냐? 안동군장(安東郡長)의 하인이 뭐라고 하느냐!” 이러면서 더 힘을 주어 불알을 잡아 당겨서 이 소년은 그만 더 겁이 나서 “사람 살려!” 하면서 뛰쳐나갔다고 한다.
측간 도깨비가 불알을 잡아 당긴다는 설은 전국적으로 통용이 되는 것인지 오성과 한음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실제로는 잡아당기지 않았지만 잡아당겼다는 거짓말을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성대감이 어릴 시절 밤에 볼일이 마려워 측간에서 일을 보고 있으니까 도깨비란 놈이 와서 “대감 문안드립니다!” 하고 갔다. 오성같이 장차 크게 될 사람은 도깨비도 알아보고 무서워서 해코지도 안하고 인사만 드리고 간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오성은 한음에게 저번에 측간에서 일을 보는데 도깨비란 놈이 와서 불알을 잡아당겨서 혼이 났다고 말했다. 한음은 그럴리가 없다고 의심하고 진실을 알고 싶어서 밤에 오성이 코를 골며 자는 틈을 타 방문을 살짝 열고 나가서 그 측간에 가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무언가가 와서 올가미로 불알을 옭아서 잡아당겼다. 한음은 아파도 아프다 소리도 못 지르고 그냥 앉아서 고생을 하다가 올가미를 놔주어서 가까스로 측간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방으로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오성이 장난을 친 것 같아서 얼른 와서 보니 오성은 아까와 전혀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코를 골며 자고 있어서 정말로 도깨비가 와서 그랬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음이 또 밤에 그 측간에 가서 일을 보고 있었다. 도깨비가 와서 문안드리면서 저번에 여기 오셨을 때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그때 오성대감과 장난을 하고 계셔서 차마 문안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음은 그제야 저번에 불알을 옭아 잡아당긴 것이 도깨비가 아니고 오성의 장난인 줄 알고 나중에 오성을 만났을 때 저번에 왜 불알을 옭아 잡아당겼냐며 야단을 쳤다. 그러니까 오성은 내가 언제 그런 장난을 했냐면서 도깨비한테 혼나고 괜히 나보고 장난쳤다고 한다며 뻗댔다. 한음은 “거짓말 마! 날 속이려고 해도 못 속여. 나는 다 알고 있어.” 라고 했다. 그러니까 오성은 웃으면서 “알기는 뭘 알아? 도깨비가 가르쳐줘서 알았지.” 라고 했다. 한음이 끝까지 아니라고 하니까 오성은 “자네가 알았으면 그때 바로 말했을 건데, 도깨비가 가르쳐주어서 이제야 말하는 거 아니냐?” 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측간 도깨비는 불알을 잡아당기는 행동은 하지 않으며 커다란 손에 측간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볼일을 보고 있을 때 나타나서 장차 대감이 될 것이라며 문안인사를 하고 물러갈 뿐입니다. 하지만 오성은 한음에게 측간도깨비가 불알을 잡아당겼다고 거짓말을 했으며 김부식, 정지상의 야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정지상의 귀신이 화장실에서 시구를 흥얼거리는 김부식 앞에 나타나 그의 불알을 잡고 시구에 시비를 걸거나, 조선시대 이종성이라는 문인이 미리 모든 것은 내다보고 자신이 아들에게 시구를 알려준 덕분에. 불알을 잡고 시구를 외위며 이 시에 대한 대구를 요구하는 귀신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던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과거에는 측간도깨비가 불알을 잡아 당긴다는 것은 국룰처럼 여겨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도쿄의 민간전승에 나오는 **요괴인 ‘카이나데’**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간략하게 이야기 하자면 절분의 밤 화장실에 가면 털복숭이인 손이 밑에서 나와 볼일 보는 사람의 엉덩이를 어루만진다고 합니다. 이때 ‘카이나데’를 물리치는 주문이 ‘빨간휴지를 줄까? 하얀휴지를 줄까?’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훗날 빨간휴지 하얀휴지 괴담으로 발전한다고 하는데 이 괴담이 한국에서도 한때 인기를 끌었던 것이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