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오랜 세월 인간과 함께 공존해 왔으며 학계에서는 인간이 '최초로 길들인 가축'으로 추정되기도 합니다. 이런 개조차도 초월적인 힘을 가진 요괴로 등장하는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 다만 독특한 점은 개의 경우 요괴가 되었음에도 인간인 주인이 있다는 것인데 제주도 신화인 <이공본풀이>에 등장하는 천리통과 만리통 개가 그러합니다.
천리통과 만리통은 ****악인인 천년장자가 기르는 두 마리의 개로 천리통은 하루에 천리를 만리통을 하루에 만리를 갈 수 있습니다. 이 초월적인 힘을 가진 두 마리의 개는 한락궁이가 아버지인 사라도령을 찾기 위해 사슴을 타고 천년장자의 집에서 탈출할 때 등장합니다.
천년장자는 한락궁이를 달아나게 한 원강아미의 목을 배어 죽인 뒤 천리통이 개를 불러 낸 뒤 “천리통아, 한락궁이를 물어오너라, 죽여 버리리라.” 하고 명하자 천리통은 한락궁이가 물을 건너려고 할 때 그를 쫓아 왔습니다. 한락궁이가 메밀범벅을 던져주니 천리통은 범벅을 먹고 너무 짜서 물을 먹으러 간 사이에 한락궁이는 물을 건너서 길을 갔습니다. 천리통이가 가 집에 돌아오자 천년 장자는 만리통이 개를 보냈습니다. 한락궁이는 또다시 메밀범벅을 던져주고서 만리통이가 물먹으러 간 사이에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 자체만 보면 별게 없긴 합니다. 한락궁이를 추적하다 받아먹은 메밀범벅이 너무짜서 물을 마시러 가느라 놓쳐버렸으며 그 뒤에 이야기에서 다시 등장하거나 그런 것이 없이 그냥 그대로 끝입니다. 그런데 이 두마리의 개를 그냥 평범한 개로 보지 않은 이유는 그 경이로운 기동력에 있습니다. 천리통은 하루에 천리(약 393km)를 달릴 수 있으며 만리통은 그에 10배인 만리(3927km)를 달릴 수 있습니다.
전설속의 동물인 천리마가 하루에 천리를 갈수 있다고해서 이름이 천리마인데 천리통은 그 천리마와 대등한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며 만리통은 그 10배의 속도로 달릴 수 있으니 평범한 생물의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임이 확실합니다.
얼마나 빠른지 실감이 안나시는 분들을 위해 시속으로 환산을 하자면 천리통은 시속 16~17km로 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천리통은 그렇게 엄청나게 빠른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저 속도를 유지하면서 한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니 속도보다는 지구력에 의의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만리통의 경우 시속 160~170km로 고속도로의 동물 중 가장 빠르다는 치타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보다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습니다. 거기다 치타는 10초 달리는것이 한계인 반면 만리통은 저 속도롤 하루종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지구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야말로 괴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에픽로그에서 그린 천리만리통. 민화 속 용맹한 개 이미지를 많이 활용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상식을 뛰어넘은 기동력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를 평범한 인간이 기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천리통과 만리통에게만 나타나는 모습은 아닙니다. 개 요괴는 대부분이 주인을 두고 있습니다.
먼저 한국의 고전 소설인 <옥련몽>, <옥루몽>, <강남홍전>이 있는데 이 세 작품은 사실상 같은 작품입니다. <옥련몽>은 <옥루몽>의 선행본이고 <강남홍전>은 <옥루몽>에 등장하는 여인 강남홍(江南紅)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별도의 소설로 윤색한 작품이죠. 아무튼 위 소설에는 남만의 왕 나탁의 진영을 지키는 사자방(獅子尨)이라는 사나운 삽살개 한 쌍이 등장합니다. 단순히 사나운 개인 것이 아니라 이종교배로 만든 혼종이라고 할수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자방은 사자와 혈교란 사냥개가 교접시켜 낳은 개로 굉장히 사나워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을 만했다. 남만의 왕 나탁은 자신의 진영을 이 사자방이 지키게 했다. 강남홍은 나탁의 진영에 숨어들어 그의 머리장식을 가져오면 겁먹고 항복할 것이라며 많은 도술을 사용하는 축융대왕(祝融大王)을 먼저 보냈다. 하지만 축융대왕은 사자방에게 걸려 싸우다가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도망쳐나왔다. 하지만 이 역시 강남홍의 계책이었다. 먼저 축용대왕을 다녀오게 한 것은 나탁을 놀라게 해서 방비를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강남홍은 나탁의 머리장식을 자신이 뽑아오겠다며 나탁의 진영으로 향했다. 축융대왕이 침입을 시도한 후였기 때문에 수많은 병사들이 창과 검으로 무장하고 늘어서 있었으며 진영의 입구 양편으로는 사자방이라는 괴상한 짐승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홍에게 이런 것들은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즉시 몸을 붉을 기운으로 바꿔 나탁의 저리장식을 빼올 뿐만이 아니라 사자방 두 마리까지 죽이도 돌아왔다. 이에 나탁왕은 그녀가 마음만 먹었으면 자신의 목도 배어갈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항복하게 된다.
사자방은 사자와 사냥개를 교배하여 만든 존재며 호랑이나 코끼리를 잡을 정도로 사납고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도 괴상한 짐승이 으르렁 대고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모습 역시 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