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만에 내가 돌아왔다 코딱지들아~ 에픽레터 그리웠지? 보고 싶었을 거야. 한층 더 풍부한 내용으로 돌아온 <가볍게 읽는 한국 설화>는 개편 이후 자세해졌어. (코너명은 가벼운데 내용은 두둑해진 아이러니) 한 주제를 3-4주에 걸쳐 자세하게 소개할 거야. 옛이야기에 담긴 화두는 무엇인지, 이 화두가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나아가 이와 관련된 음악, 영화까지! 어때 말만 들어도 신나지 않아? 그럼 11월에 함께 살펴볼 상사뱀 이야기로 가보자규

나란 K, 배추도사 무도사의 향기가 나는 에디터
출처 : KBS <옛날 옛적에>

나란 K, 배추도사 무도사의 향기가 나는 에디터 출처 : KBS <옛날 옛적에>

상사뱀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사뱀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예쁜 처녀에게 반한 남성이 잠이 들었는데, 영혼이 실뱀이 되어 코로 빠져나온다. 뱀은 점점 크기가 커져서 나중에는 큰 구렁이가 된다. 이 모습을 본 목격자가 처녀에게 가서 조심하라며 뱀을 물리칠 방법을 알려준다. 처녀가 조언에 따라 추한 모습으로 위장한다. 예쁜 처녀를 찾아온 뱀은 추한 모습을 보고 크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실뱀이 되어 돌아간다. 잠에서 깬 남성은 ‘집에 갔더니 (여자 생김새가) 더럽고 누추하더라’고 했다.

이야기에서 뱀이 되는 남성은 여성을 평가하고 멋대로 다가가. 이 모습에서 권력이 느껴져. 예쁘면 상대 마음이야 상관없이 마음대로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게 권력이니까. 그런데 이야기 속 추한 모습이 도대체 어떻길래 뱀을 한 번에 무찌르는 걸까?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되는 점은 화장실이야. 뱀을 피해서 화장실에 앉아있으라고 하거든. 신비감을 깨는 행동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 거야. 결혼해서도 생리현상 안 트는 부부들 있다고 하잖아.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을 보여줘서 환상을 깨는 거지.

신분이 낮은 총각이 양반집 처녀를 보고 상사병을 앓다가 죽은 뒤에 구렁이가 되었다. 구렁이는 처녀 몸을 딱 감아 떨어지지 않았다. 처녀 집에서 부모가 온갖 귀한 약을 구하고 무당을 불러서 뱀을 떨어뜨리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떼지 못했다. 결국 처녀는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는데 그 뒤로 그 바위를 상사바위라고 불렀다.

신분차이로 사랑을 이룰 수 없어 죽은 총각의 이야기는 안타까워. 그런데 안타까운 건 총각 때문에 죽은 처녀 또한 마찬가지야. 심지어 처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총각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구렁이로 고통을 겪었다고 나와. 게다가 집착은 얼마나 집요한지 온갖 노력을 해도 떨어지지 않지. 구렁이의 애정 표현은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이야. 처녀는 뱀 때문에 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집에서 내쫓기고 결국 죽게 되지.

분노와 애정은 한 끝 차이라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걸까? K는 이해가 안돼ㅜㅜ

분노와 애정은 한 끝 차이라는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사람을 그렇게 죽일 수 있는 걸까? K는 이해가 안돼ㅜㅜ

이렇듯 남성형 상사뱀 이야기 속에서 욕망은 육체적이고, 공격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는 거야. 내 감정에 매몰돼 뱀이 되어 상대를 괴롭히는 건 모든 상사뱀 이야기의 공통이야. 하지만 남성형에서는 유독 공격과 파멸이 두드러져. 여성형 상사뱀은 보다 조심스럽고 뱀이 되기까지 과정도 훨씬 자세해. 뱀이 되기 전에 직접 찾아가서 사랑을 받아달라 요청하기도 하고, 상대의 어떤 행동에 상처를 받아서 뱀이 되었는지 설명하는 장면도 많아. 이 과정에서 상대가 이해해주면 수호신이 되어 평생 옆을 지키며 보호해주기도 하지. 수호신이 되는 결말은 남성형 상사뱀 이야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 그래서 남성형 이야기가 공격적 성격이 강하다고 하는 거야.

다음주에는 여성 상사뱀 이야기를 살펴보자. 유형이 다양해서 더 재미있을 거야. 이번 레터가 조금 길었는데 흥미로운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어. 그럼 다음 주에 만나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