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서 산멕이의 생명력과 힘에 대해 함께 보았습니다. 계획하기로는 이번 레터를 마지막으로 산멕이 레터를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준비하다보니 산멕이 뉴스레터의 전체 내용을 정리하는 순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레터에서는 길었던 뉴스레터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다음 레터에서 “진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지난 12회의 뉴스레터에서 산멕이의 구성, 흐름, 목적, 참가자들의 생각, 생명력 등 여러 주제를 다뤘습니다. 정리하며 크게 3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장 먼저 산멕이의 목적입니다. 다음은 산멕이에 등장하는 신들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산멕이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산멕이의 목적은 앞선 레터들에서 여러 번 말씀드렸듯, 조상을 모시고 화전놀이를 하러 가는 것입니다. 산멕이에 참가하는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산멕이를 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기도고요. 가정, 농사 잘 되게 하고. 조상님들 모시고 화전놀이 가니까 … 전부가 다 기도에요. 놀려드리는 거죠. 노는 게 기도입니다”
산멕이의 목적인 화전놀이는 단지 벚꽃축제 구경같이 아름다운 꽃을 보러 놀러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참가자들에게 놀이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조상을 모시고 즐겁게 노는 것은 조상의 도움과 보호를 통해 현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기도입니다. 노는 것이 기도라는 생각 위에서 참가자들은 열심히 놀아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잘 준비하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놉니다. 잘 놀아야지 더 큰 도움을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전놀이를 가는 주된 대상은 조상이지만, 산멕이에서는 산과 하늘 등지에 있다고 여겨지는 신들에 대해서도 기도를 하고 함께 놉니다. 산멕이의 참가자들이 이해하는 세계 속에는 조상뿐 아니라 여러 신들과 성스러운 존재들이 얽혀있습니다. 이런 얽힘 위에서 조상을 모시고, 종교적 열망을 표현할 때, 관계되어 있는 모든 존재들을 정당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멕이에서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관계를 맺는 다양한 존재들에게 산멕이라는 잔치와 행사를 알리고 초대해서 함께 놉니다. 아마도 이런 사고 속에는 더 많은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과 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있을 것입니다.
산멕이의 목적을 조상과 함께하는 화전놀이라고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조상은 우리와 가까운 할머니, 할아버지 또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등 직계조상을 지칭하는 동시에 신화적인 조상들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특히 산멕이에서 중요한 신화적 조상으로 여겨지는 존재는 산과 군웅입니다. 먼저 산은 영어로 mountain을 의미하는 산이 아닙니다. 산은 참가자들이 표범신으로 믿는 존재입니다.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에 우리 조상님들이 범을 믿던 조상들인데 그 분들은 다 산을 모시는 거죠.”
인터뷰를 해 보면, 산멕이에 참가하는 분들은 단군신화의 곰이 아니라 줄무늬 호랑이, 즉 표범을 자신들의 신화적 조상으로 여깁니다. ‘특정한 신화나 경전을 찾을 수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그냥 어른들이 해오던 대로’,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답합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설득력이 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분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집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신화적 조상은 군웅입니다. 군웅신이 다른 지역에서는 무섭고 강한 군사적 신으로 여겨지는 것과 다르게, 산멕이에서는 가축을 기르고 안전을 지켜주는 조상신으로 여겨집니다. 군웅을 모시는 군웅굿의 순서에서는 신화를 읊으며 함께 자신의 신화적 혈맥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산멕이를 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들고 올라가는 참가자들의 뒷모습
누군가 산멕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라고 한다면, 산멕이의 목적과 신들에 대한 앞의 두 가지 이야기를 꼭 언급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꼭 하고싶은 이야기는 산멕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산멕이에 참여하는 분들은 강한 주체의식을 가지고 참여합니다. 종교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무속인의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의례 중간에 일어나 ‘어른들이 하시던 대로 하라’는 일갈을 날리기도 합니다. 이는 단지 성격이 강하거나 경험을 빙자한 텃세를 부리려는 행동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산멕이의 참가자들에게는 자신들이 의례를 구매하는 소비자라는 생각보다 의례를 만드는 주체라는 의식이 강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산멕이에 참여하는 분들에게 산멕이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는 진실을 확인하는 비밀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일 겁니다. 산멕이는 자신들의 신화적 시작과 기억 속의 조상들 그리고 아래 세대의 자녀들을 연결해주는 강력한 사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산멕이의 힘과 중요성이 드러나는 수면 아래에는 산멕이의 신화와 의례를 눈속임이나 거짓이 아니라 명백한 진실로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멕이를 준비하는 분들은 위의 사진처럼 큰 짐을 들고 높은 산으로 올라갑니다. 연세가 많아 허리와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도 보자기에 싼 큰 짐을 들고 올라갑니다. 대신 짐을 들어드리겠다는 제안에 **“들고 올라가는 것도 정성”**이라며 잠깐 앉아서 쉬었다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레터들을 통해 알량한 수준에서 몇 번 본 장면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짐을 드는 어르신들의 진지함 속에 어떤 마음과 생각이 있었는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