ㅎ2ㅎ2 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 상사뱀 이야기로 돌아왔다. 다들 짝사랑 경험 있니? K는 20대 초반 짝사랑 전문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이불킥 빵빵 차는 일화가 한둘이 아니야. 그래서 상사뱀 설화 주인공들이 짝사랑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특히 공감 가. 물론 이후에 뱀이 돼서 상대를 괴롭히는 건 이해 불가지만, 그 롤러코스터 탄 듯 울렁거리는 마음은 공감할 수 있어. 본격적인 이야기 시작 전에 코딱지들 복습하고 가자. 지난주에 뭐 읽었니? 맞아 남성형 상사뱀. 특징이 뭐라고? 응 육체적, 공격적. 거기 안경 쓴 코딱지 복습이 휼륭하구만. 자 이번 주 진도 나가자!
다들 짤 보면서 짝사랑 경험 떠올린 거 다 알아.
각편 : 구연자가 구연한 구비문학 작품을 개별적으로 부르는 말 지난주 화소 설명 잘 읽었니? 오늘 설명할 단어는 ‘각편’이야. 각편은 구비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이야. 소위 옛날이야기라고 부르는 설화는 어딘가에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게 특징이야. 이런 특징을 구비전승이라고 하지. 기억에 의존해서 얘기하다 보면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야. 사람들이 말할 때 인상 깊었던 내용을 중심으로 말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은 조금씩 바꿔버리거든. 그렇게 한 사람이 말한 이야기 하나하나를 각편이라 불러. 예를 들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보면 아이 셋 낳고 날개옷을 찾은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내용으로 끝나는 각편, 나무꾼이 선녀를 쫓아 하늘로 올라가는 각편, 나무꾼이 선녀와 하늘에서 살다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 땅에 내려왔다가 금기를 어겨 수탉이 되는 각편 등이 있어. 하나의 유형 안에 다양한 결말의 각편이 있는 거지. 이야기 결말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 이게 바로 설화의 매력이야.
여성형 상사뱀의 두 분류 : 미혼형과 기혼형 남성형 상사뱀이 상사풀이형과 상사뱀 퇴치형으로 나뉘는 것처럼, 여성형 이야기도 둘로 나뉘어. 여성 주인공이 결혼했으면 기혼형, 아니면 미혼형이야. 이중에서 미혼형은 이야기가 많아서 결말에 따라 상대 남성이 죽는 파국형, 다른 사람이 개입하여 화를 당하는 전이형, 상대와의 대화로 뱀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해원형으로 나뉘어. 유형이 뭐가 많지? 조금 복잡할 수 있는데 그만큼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해줘. 상사병 앓던 사람이 뱀이 되는 이야기가 한국에 이렇게 많다니! 신기하지 않아? 하나의 화소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일정한 유형을 형성한다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뜻이 될 거야.
기혼형 : 네 죄를 네가 알렸다. K는 상사뱀 설화중에서 여성 기혼형을 좋아해. 다른 이야기는 상사뱀의 집착에 거부감이 드는데 이 유형은 도리어 상사뱀이 된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거든. 이야기를 살펴볼까?
옛날 어느 부부가 결혼했는데, 이후 남편이 일본에 가서 다른 살림을 차리고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홀로 시부모를 모시다가 빼빼 말라 죽고 말았다. 시부모가 죽은 아내를 묻고 돌아오니 방 안에 큰 뱀이 있었다. 죽은 아내가 뱀으로 환생했구나 싶어 통에 담아 일본으로 보냈다. 짐을 받은 남편이 통을 여니 뱀이 나와 남편을 꽁꽁 감쌌다.
이야기가 참 슬프지. 결혼해서 믿을 사람이라고는 남편밖에 없는데 남편은 딴 살림을 차리고 돌아오지도 않고, 홀로 시부모님 모셔야 하니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죽어서 상사뱀이 됐다는 게 이해가. 남편은 어떻게 됐을 것 같아? 각편에서는 남편이 죽기도 하고 안 죽기도 해. 만약 K가 이 설화를 다시 써야 한다면, 난 남편을 죽였을 것 같아. 증오하니까👿
1) 잘생긴 양반 남성을 짝사랑하는 평민 여성이 있었다. 2*) 여성이 상사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주위 사람이 남성에게 상황을 알렸는데, 남성이 마음을 거절했다. 3) 여성이 죽어 상사뱀이 되었다. 4-1) 상사뱀이 남성의 몸을 감고 놓지 않는다. → 파국형 4-2) 남성은 상사뱀이 된 여성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하나 주위 사람이 뱀을 없애 후환을 당한다. → 전이형 4-3) 남성이 상사뱀이 된 여성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하여 상사뱀이 다시 사람이 된다.* → 해원형
줄거리를 보면 파국·전이·해원형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는 공감과 위로야. 사랑이 가득 차다 못해 넘쳐서 집착과 증오가 되고, 그 결과 상사뱀이 되지만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증오가 사르르 녹는 거지. 해원형에는 상사뱀이 다시 사람이 되지 않고 수호신이 돼서 평생 상대방을 지켜주는 각편도 있어. 새삼 공감과 위로의 힘이 대단한 게 느껴져.
이렇게 고백했으면 받아줬을까..
양반 남성과 평민 여성, 사회적 차이로 인한 사랑 좌절 미혼형 설화에서 짝사랑의 대상인 남성은 모두 양반이야. 그것도 남명 조식, 월천 조목, 이순신 등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유명인이지.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름이 전해질 정도이니 당시에는 얼마나 위상 높은 인물이었겠어. 이에 비해 짝사랑 하는 여성은 모두 이름 없는 하층민이야. 주막집이나 아전의 딸 같이 이름도 없지. 짝사랑 상대는 양반이고 주체는 평민인 모습은 여성형과 남성형이 같아. 그런데 이야기 구조와 결말에는 차이가 있지. 상사뱀 설화에 개인의 욕망 그 이상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는 말 기억하니? 왜 같은 하층민인데도 남성과 여성은 욕망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까? 그 방식의 차이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통제를 찾을 수 있어.
남성의 성적 욕망과 여성의 성적 욕망 여성형 이야기를 보며 남성형과 다른 점을 찾았니? 여성형은 이 여성이 왜 상사뱀이 될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가 자세해. 기혼형은 물론이고 미혼형에서도 남성형과 달리 여성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남성이 거절했다는 내용이 등장하지. 여성이 뱀이 되려면, 다시 말해 하고 싶은 대로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려면 이유가 필요한 거야. 남성의 변신에는 별다른 이유가 필요 없어. 남성의 성적 욕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자연스럽게 인식됐거든. 하지만 여성이 뱀이 된다?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할 사건인 거야. 그러니 충분한 설명을 덧붙이는 거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뱀이 될 수 밖에 없었어! 하고.
여성형 상사뱀 속 의견 표출의 욕구 : 내 얘기를 들어봐! 여성형 상사뱀 설화 각편을 쭉 읽다 보면 결국 여성이 원하는 건 대화였다는 생각이 들어. 예전에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되고 욕망을 표출하기도 힘들었잖아. 입이 있지만 말을 할 수 없었지. 순종이 최고의 미덕이라 여겨졌으니까. 이전 레터에서 소개한 며느리 설화 기억하니?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표현이 유행이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여성형 상사뱀, 특히 미혼형 설화가 특히 많았던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상대와 계급장 떼고, 성별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얘기하길 바랐기 때문은 아닐까? 짝사랑이 죄는 아니니까.
이렇게 또 대화의 중요성을 배워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