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에서는 산멕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다른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산멕이가 가진 생명력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초반의 레터에서 말씀드렸듯, 현재는 산멕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고, 같은 가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사라지면서 강원도 영동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던 산멕이는 지금 두세 곳에서 밖에 연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살펴보고 인터뷰한 산멕이 역시 사라질 위기에 부딪혔습니다. 그 산멕이가 위기였던 이유는 다른 곳과 같은 인구의 문제보다 외부와의 갈등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제가 살펴본 산멕이가 진행되는 장소는 한 절의 뒷산입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모 대기업의 주도로 도로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절의 부지와 산멕이를 진행하는 공간은 도로가 지나갈 것으로 예정되는 구획에 속해 있었고, 철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역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차원에서 도로와 기반시설이 새롭게 건설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과 공간을 원래부터 사용하던 사람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큰 갈등이 빚어지는 일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건설회사는 공격적으로 건설을 추진하려 했고 결국 폭력과 협박 등 심각한 문제들로 이어졌습니다. 도로공사를 둘러싼 갈등과 투쟁이 이번 레터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런 갈등을 배경으로 산멕이라는 종교 의례가 갈등상황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도로공사를 둘러싼 갈등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협상과 대화가 이루어졌지만 쉽게 합의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공간을 새롭게 점유하려는 건설회사와 공간을 떠나려 하지 않는 원주민들 사이에는 협상의 공간이 없었습니다. 높은 금액을 제시해도 떠나기를 거부하는 주민들에게 건설회사는 소송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소송은 절의 스님, 산멕이 보존회의 구성원들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갈등의 과정을 살펴본 한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고소를 수 십 건 당했는데 78건인가? (중략) 산멕이 보존회 하는 간부들을 알아내서 개인한테 고소도 했어. 산멕이 원래 터 거기를 (공사) 한다고 해서 다 데모했거든. 법원에 다 불려가고 이러다 보니 산멕이가 위축이 된 거지. (한 분을 가리키며) 이 분은 당주면서 그리고 보존회 총무도 하고 계시고, 간부인지 다 알아내서 고소해서 뭐 많이 당한 사람은 일곱 여덟 건도 당했어.”

고소와 고발 심지어 폭력사태로까지 번지기도 한 갈등은 산멕이의 위축을 낳았습니다. 인터뷰를 한 여러 어른들은 산멕이에 참가하던 많은 구성원들이 이러한 갈등 속에서 산멕이를 오지 않기 시작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의 갈등에서 산멕이를 유지해온 구성원들은 법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지난한 갈등 끝에 2015년 공사 중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서 공사는 중지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지방정부에서 도로의 구역을 계획한 결정이 무효임을 인정하는 소송에서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지난한 갈등 상황에서 산멕이를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요? 흔히 말하기를 송사는 한 건에만 휘말려도 삶이 피폐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 십 건의 소송 속에서 산멕이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소송의 승리에 산멕이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요?

정말 우연히도 인터뷰를 하던 중 건설회사의 구성원들이 산멕이 보존회 분들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저는 외부인이었지만 양측의 대화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건설회사의 관계자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타당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도로의 필요성, 적절한 보상금 등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물론, 법원에서 도로계획 자체를 무효로 했듯, 도로공사는 근본부터 절차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공사였습니다. 제 요지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외한 표면적인 말로만 들어보면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회사 관계자들의 합리성은 우리가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합리성이었습니다. 저는 산멕이를 해온 어르신들의 반박과 논리가 궁금해졌습니다. 어르신들은 공사 절차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이 역시 타당한 이야기였고, 역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합리성이었습니다. 저는 놀라게 했던 말은 이와 다른 말이었습니다. 한 어르신이 이렇게 말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산멕이는 삶이야. 이건 없애거나 쫒아낼 수 없어.”

산멕이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두 눈으로 보았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10억을 받고 평생 치킨을 먹지 않을 것이냐?’는 등의 농담을 접합니다. 현실성 없는 가정이지만 저는 잠깐 고민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멕이는 치킨과 같이 얼마큼의 돈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멕이는 산멕이를 하는 분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산멕이를 자신의 삶에서 또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에서 중심으로 이해하는 사고는 갈등을 낳기도 했지만, 그 갈등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개 큰 기관 혹은 기업과의 갈등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포기하고 떠나갑니다. 그들이 유약해서가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멕이를 지켜온 어르신들은 매년 임시로 마련한 다른 공간에서 산멕이를 하면서 자신들이 버텨야 하는 이유를 재확인했습니다. 앞선 레터들에서 살펴본 군웅굿에 사용되는 신체, 위패, 음식, 음악 등은 재확인의 확신을 주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산멕이라는 종교 의례는 도로공사를 둘러싼 갈등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멕이는 갈등 속에서 구성원들을 결집하는 중심이 되기도 했고, 결국 여러 문제들을 밝혀내 기존의 공사계획을 변경시키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산멕이를 진실이라고 믿었고, 강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산멕이는 다시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돌파할 구심점과 힘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역동을 보고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13회에서는 길었던 산멕이 이야기의 마무리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에디터 J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