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터의 군웅신 이야기를 잘 읽으셨나요? 그 동안 5회에 걸쳐 산멕이가 진행되는 절차를 차례대로 소개했습니다. 잠깐 돌아보자면, 가장 먼저 부정한 것들을 물리치는 부정치기가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본격적인 의례에 들어가서 하늘과 산 그리고 문수를 각각 맞이하는 하늘맞이, 산맞이, 문수맞이를 했습니다. 그런 뒤에는 자신과 가깝거나 신화적인 조상으로 여겨지는 산과 조상 그리고 군웅을 각각 위해 산굿, 조상맞이, 군웅굿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군웅굿 이후 이어지는 남은 절차들을 소개하고, 그 중에서도 조상 옷 갈아입히기와 농사놀이를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앞서 보았듯 산굿, 조상맞이, 군웅굿을 통해 여러 조상을 잘 모신 뒤에는 조상님들에게 새로운 옷을 지어드립니다. 새로운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단을 먼저 잘 재단해야합니다. 산멕이에서도 옷 갈아입히기 이전에 원단을 재단하는 길가름 순서가 있습니다. 길가름은 각 가정 별로 준비해온 삼베를 넓게 핀 뒤 칼로 잘르는 의례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삼베를 가를 때, 삼베가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도록 지그재그 형태로 자른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수명과 복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길게 자른 삼베는 이제 조상님에게 선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조상들에게 옷을 입혀드리기 위해, 산멕이에 참여하는 분들은 제당터 옆에 있는 나무로 갑니다. 그런 뒤 길게 잘린 삼베의 끝에 작은 돌을 묶어서 잘 날아가게 하고, 잘린 삼베가 나무가지에 둘둘 말리도록 던집니다.
날아간 삼베가 아래의 사진처럼 가지에 잘 걸리면 사람들은 조상님이 옷을 잘 받아 입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 흥미로운 점은 나뭇가지가 높은 곳에 있다 보니 삼베를 잘 걸지 못하고 실패하는 분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나무에 삼베를 잘 걸지 못하면 주변에서는 박수를 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걸릴 때 까지 응원합니다. 산멕이가 끝난 뒤에 참여하는 한 어르신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에디터 J: 어떤 분들은 삼베가 나무에 탁 던져서 착 걸리는데, 어떤 분들은 비껴가기도 하시네요. 한 번에 던지지 못한 분들은 혹시 조상님이 잘 안 받는다거나 운수가 안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A: 그런 건 아니고 한 번에 탁 맞으면, 누가 옷 사줬는데 사이즈가 딱 맞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B: 그래, 한 번에 맞으면 기분이 좋잖아!
조상 옷 갈아입히기를 하는 모습
이어지는 농사놀이는 말 그대 즐겁게 노는 놀이입니다. 농사놀이에 참가하는 분들은 아래의 사진에 나오듯 머리에 촛대를 얹기도 하고, 소와 닮은 괴상한 가면을 쓰기도 합니다. 또 복조리 두 개를 날개 삼아 학의 모습을 흉내 내기도 하고, 신랑과 신부 분장을 하기도 합니다. 조금은 외설적이지만, 여성 참가자가 남근 모양의 장식을 달기도 하고 남성 참가자가 여성의 유방 모양 장식을 달기도 합니다.
농사놀이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수한 놀이입니다. 산멕이에 참여하는 한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놓고 이제 노는 거지. 괴상망측하게 입고 농사놀이 하는 거지. 다 끝낸 다음에 (본격적으로) 춤추고 놀기 전에 두드리고 분장하고 먼저 조금 노는거야.” 산멕이의 목적은 화전놀이를 하며 조상들과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참여하는 참가자들 역시 함께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농사놀이에 참여하는 분들은 평소의 근엄한 태도와 경직된 동작을 모두 벗어던지고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함께 춤을 춥니다. 이는 함께 즐겁게 놀자는 목적을 보여줍니다.
다양한 복장을 하고 춤 추는 농사놀이의 한 장면
농사놀이의 또 다른 목적은 풍요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농사놀이에 등장하는 다양한 복장들의 의미를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산멕이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중추적인 참가자분 조차 농사놀이의 복장들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추측해보자면, 괴상하게도 보이는 여러 복장들은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보입니다. 소를 닮은 가면을 착용하고 씨를 뿌리는 행위는 가축과 농경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상징입니다. 신랑, 신부의 복장이나 외설적인 여성과 남성의 신체를 드러내는 복장 역시 풍요의 상징입니다. 성적인 요소는 생산력과 풍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과거 함경도와 강원도 부근에서는 나경(裸耕)이 행해진 바 있습니다. 나경은 농사를 준비하는 초봄에 벌거벗은 남성이 땅을 쟁기로 갈며 음담패설을 외치는 행위입니다.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된 이런 풍습은 여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땅을 자극해서 생산력을 높이려는 행동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농사놀이에서 외설적인 복장을 하는 것 역시 생산성을 상징하는 성적인 요소들을 통해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행위인 것으로 추측합니다.
농사놀이와 비슷한 의례들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아래의 그림은 로마에서 성행하던 플로라제(4월 27일)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시기 청년들은 나체로 축제를 즐겼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풍요를 위해 남녀의 성적인 생명력으로 땅을 자극하는 일은 인도의 홀리축제, 동부 유럽의 농경 마을, 뉴기니 근방을 비롯한 세계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