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통미녀는 생소할지 몰라도 평소에는 램프 속에 있다가 램프를 문지르면 속에서 연기처럼 나타나는 램프의 마신(魔神)지니 라면 디즈니의 <알라딘>덕분에 웬만한 사람이 다 알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죽통미녀는 이런 지니와 비슷한 느낌의 존재입니다. 죽통미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김유신이 서주에서 서라벌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에 이상한 기운이 서려있는 나그네가 나무에서 쉬고 있기에 김유신도 옆에서 쉬면서 자는척 하며 나그네를 살펴보았습니다. 나그네는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 다음 품속에서 죽통을 꺼내 흔들자 그 안에서 두 명의 미인이 나와 함께 다정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얼마 후 나그네는 미녀를 다시 죽통에 넣고 일어나 길을 떠나자 김유신은 그를 쫓아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온화하며 친절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서라벌에 돌아온 김유신은 그를 남산 밑 소나무 아래로 대려가 잔치를 베푸니 나그네는 죽통에서 두 미녀를 나오게 하여 함께 참여케 하고 자신은 서해(西海)에 사는데 동해(東海)에서 아내를 얻어 지금 아내를 대리고 처갓집으로 문안인사를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곧 풍운이 일어나 천지가 캄캄해지더니 나그네는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이야기를 보면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요괴나 귀신보다는 신령이나 정령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지성이나 인격은 인간과 같으며 죽통속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딱히 특별한 능력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확히 어떤 존재다, 라고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동해와 서해의 이야기가 나온 것을 봐서 용궁에 사는 존재거나 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인이 죽통에서 나왔다고 해서 죽통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것은 아니고 무언가 술법을 사용하여 죽통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여인들이나 남자 모두 특별한 능력이 없는 그냥 평범한 존재들일 뿐이고 그 죽통이 <서유기>에 등장하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호리병인 '자금홍호로'나 '양지옥정병'같은 신기한 물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픽로그에서 작업한 죽통미녀의 모습
이야기가 좀 짧은 것 같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덤으로 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에 그 죽통이 <서유기>에 등장하는 마왕인 금각과 은각의 호리병과 비슷한 물건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 했는데 ‘우리나라에 그런 신기한 도구가 어디있어? 우리나라는 뭐 도깨비 방망이나 도깨비 감투 뭐 그런거만 있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도구가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에서도 등장합니다. 한국의 고전소설 <옥루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여우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하여 남쪽 오랑캐 왕의 처가 되어 전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병부상서 겸 정남 도원수인 양창곡이 여우를 제압한 뒤 죽이지 않고 설득 하였습니다. 이에 여우는 감화 되어 앞으로는 부처님 앞에 귀의 하여 악업을 짓지 않겠다고 하고 순순히 물러났습니다. 이후 그 여우는 서천극락으로 승천하게 되며 서천으로 떠날때 자신의 동료들에게 살고있던 골짜기를 맡기면서 절대 난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여우의 동료들은 여인으로 둔갑하여 북쪽의 흉노족 왕의 아내가되어 침략을 부추깁니다. 이에 양창곡이 흉노족의 침략은 잘 막아냈지만 그 요괴들에게 습격받아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때 승천했던 여우가 창곡 앞에 나타나 덕분에 불교에 귀의하여 서천에 귀의하여 극락을 누리고 있다고 말하고 사부의 명이라며 옛 동료들을 호로병으로 전부 빨아들이고 떠나버렸습니다.
딱히 정확한 이름은 아니지만 호로병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역시 호리병의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위에서도 이야기 했듯 <서유기>의 금각, 은각 형제가 가지고 있는 ‘자금홍호로’가 연상되는 물건인데 이게 어쩌면 진짜 ‘자금홍호로’일지도 모릅니다. ‘자금홍호로’가 원래 태상노군의 물건이며 이 여우는 서천극락으로 올라가 그곳에 사는 존제의 제자가 되었으니 태상노군과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요괴들을 빨아들이는 호로병이라는 도구도 신기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역시 예사로운 존재는 아닙니다. 불교에 귀의 하여 승천하였으며 서천극락에 사부까지 두게 되었는데 옛동료를 잡아가는 것이 사부의 명이라는 것을 보면 높은 신선이나 신의 제자가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 설화나 고전소설을 보면 사람을 현혹하거나 정기나 피를 취하는 나쁜 여우요괴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선하며 신적인 존재에 이르른 여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